노래란 흥인 것 같다.
오늘 홍대 놀이터에서 야외공연을 봤다.
문정현 신부님의 글에 곡을 단 평화가 무엇이냐?란
노래를 불렀다.
운동권? 찌질함 그런 건 우선 모르겠다.
노래란 이성이 아니지 않나?
외로움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배고품이 없는 세상, 서러움이 없는 세상, 쫗겨나지 않는 세상
군림하지 않는 세상
평화란 거기 있을까?
노래라는 장비를 가지지 않고 그 세상에 오르는 건 맨몸으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행위일까?
적어도 그들은 같이 노래 불렀다.
멈추지 않고, 걷는 그들의 발걸음과 그 지도대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본도 보지 않고, 좁은 세상만 현실적으로 살아가는게 인간일까?
노래 한 곡에 기분이 참 좋아졌다.
가을이 왔는데, 가을은 타지 못하고, 전철만 탈줄 아는 바보가 된 것같아 , 어제 가을 정거장을 찾아 여행을 했습니다.
영인 문학관에서 김동리, 최정희 전을 보고, 가인 갤러리에서 일상의 수묵전을 봤습니다.
텅빈 운동장 철봉대에 걸쳐진 우산하나와 공간에서 여백의 미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저렇게 전통의 계승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의 문학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잘 찾기 어려웠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문학의 원형은 어떤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을을 타고 고향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질문드립니다.
영인 문학관에서 김동리, 최정희 전을 보고, 가인 갤러리에서 일상의 수묵전을 봤습니다.
텅빈 운동장 철봉대에 걸쳐진 우산하나와 공간에서 여백의 미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림은 저렇게 전통의 계승을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한국의 문학은 어떻게 계승되고 있는지 잘 찾기 어려웠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한국 문학의 원형은 어떤 작품인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가을을 타고 고향으로 가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질문드립니다.
예전엔 당연히 되던 것이 더이상 당연이 되지 않을때 나에게 말한다.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라고.

